류미월 기자.

[류미월 기자] 입동 무렵이지 싶다. 어릴 적 농촌에서 살던 한때가 떠오른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냄비를 들고 잰걸음으로 오셨다. 냄비 가득 김이 솔솔 나는 호박죽을 가져오신 것이다. 안방 아랫목에 앉아 엄마와 이 얘기 저 얘기 속상한 얘기도 하면서 함께 한 숟가락씩 떠먹으면 정말 맛있고, 헛헛한 배도 금방 볼록해졌다. 마음이 푸근해지고 이웃집 아주머니의 따스한 마음 온도가 내 몸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맘때면 잘 익은 누런 호박이 집마다 대문 헛간에 가득 찼고 우리 집 마당 한쪽에도 나뒹굴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집 아침 식탁 풍경은 어떤가? 아들은 지방에 살고 우리 부부와 딸, 이렇게 세 식구가 사는데도 함께 밥 먹는 일이 드물다. 출근 시간이 따로따로이다 보니 급한 사람부터 먹고 일터로 향하고 나는 식구들이 출근한 뒤에 혼자서 먹는다. 간혹 라디오를 듣다가 좋은 음악이 나올 때는 커피부터 한잔 내린다. 먹는 게 우선인지 음악 청취가 우선인지 헷갈린다.

감미롭게 흐르는 음악에 젖어 창밖을 바라보며 빵 한 조각과 과일 몇 조각으로 아침을 대신할 때도 많다. 특히 점심은 약속이 없을 때는 혼자 찬밥을 데워먹거나 우유 한 잔에 간식으로 때운다. 퇴근 후에도 남편과 딸은 모임이나 그밖에 볼일로 외식하고 올 때가 많다. 주말에는 각자 취미 생활과 지인들의 결혼식 등 행사가 많으니 또 따로따로 먹기 일쑤다. 찌개를 보글보글 끓여서 다 함께 모여서 먹는 날은 손꼽을 정도다.

어떤 아는 분은 좋은 일은 한다. ‘노인의 전화’에서 봉사하며 보살핌이 필요한 취약한 노인들에게 온정을 베풀고 있다. “노인들은 불쌍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이 많아요”라며 말을 잇지 못한다. 요구르트 배달 아줌마에게 수당을 지급하고 아줌마를 통해 일부 지역 독거노인들에게 매일 요구르트를 배달시킨다. 요구르트를 건네는 노인들에게 현장에서 일일이 얼굴도장을 찍으며 혹시라도 위급한 상태를 발견하면 배달 아줌마는 곧바로 협회에 보고하고 응급조치를 취하게 된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단지 인근에는 고교가 있는데 학생들이 24시간 편의점에 우르르 몰려가서 컵라면이나 차가운 삼각 김밥 등으로 급히 허기를 때우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마치 사람 동물들이 좁은 공간에서 사료를 먹는 것 같은 착잡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침저녁으로 싸늘한 냉기가 급습해 온다. 누군가와 악수라도 할 때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마음이 데워지는 것만 같다. 안부가 그리운 계절이다. 특히 사람의 온도가 그리운 계절이다. 맛있는 요리가 식탁에 진수성찬으로 가득해도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다. 제맛이 안 난다. 반찬이 한두 개여도 좋은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먹으면 밥맛이 꿀맛처럼 느껴지지 않던가.

이번 주말에 아들이 지방에서 올라온다는 문자 연락이 왔다. 벌써 ‘당근과 피망을 송송 썬 잡채’를 해볼까 ‘우거지를 넣은 돼지 등갈비찜’을 해볼까 마음속이 부산하지만 일의 수고로움보다는 기쁜 마음이 앞선다. 사랑이 배어 있는 돌봄을 주고받는 한 끼 밥상에는 숭고함도 함께 있어서일까. 식탁의 빈 의자는 왠지 쓸쓸하다.

‘얼굴이 반찬이다’라는 말이 있다. ‘밥상머리에는 얼굴 반찬이 없으면 인생에는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라는 공광규 시인의 ‘얼굴 반찬’이라는 시의 구절도 있다. 초겨울로 접어들며 기온이 뚝뚝 떨어져 냉기를 더한다. 가족이든 지인이든 함께 모여 알콩달콩 달그락 화음(和音)을 내며 밥 먹는 시간을 자주 가져보면 어떨는지? 얼굴이라는 반찬 하나 더해서 풍성한 맛을 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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