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구 ‘BSI Group Korea’ 이사. /’BSI Group Korea’ 제공

[전민구 ‘BSI Group Korea’ 이사] 지속가능한 발전의 이슈가 쉽게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접근 원칙도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당연히 이미 알고 있는 문제와 해결방안도 같다. 하지만 늘 새로운 것이 있는 듯 얘기한다.

일부 학자나 기업이 CSR이 마치 새로운 개념으로 변화, 발전하고 있는 것처럼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용어를 만들고, 팀 명칭까지 바꾸고 있지만 이는 단순히 CSR의 본질적 철학을 사회공헌 영역으로 오해하거나 축소, 왜곡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과 그 본질, 철학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크게 변화한 것이 없다.

다만 변화한 것이 있다면, 경영진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늘 장기적이었던 사회책임 추진의 가치에 마치 새로운 방향이 나타난 것처럼 변화와 재해석을 시도하고, 그러한 분석으로 도출된 용어와 접근방법이 마치 새로운 것인 것처럼 소위 워싱(Washing) 하거나 치장하려고 한 부질없는 노력이 나타난 점이다. 그러는 와중에 정작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추구해야 할 근원적 문제는 등한시되거나 시도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 지속가능경영과 CSR이 도입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이 분야에서 일하며 지켜온 바에 따르면, 처음 10년간은 CSR의 개념이 논의되고 다양한 노력으로 기업 경영의 일상용어로 자리매김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보고서는 증가하고, 교육은 활발했으며, 검증은 엄격했고, 각종 지표도 기업의 경영시스템 개선에 활용되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이러한 노력은 정체에 있거나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이는 비단 보고서 발행 숫자가 줄어든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기 저성장 고위험으로 대변되는 어려운 기업경영 환경 속에 장기적 철학이 없는 기업들에서 CSR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했다. 또 CSR이라는 용어를 의미 없이 바꾸어 연명하려고 애쓰거나 한국에만 있는 화려한 지표, 시상에만 천착하는 기업도 많았다. 아울러 경영 개선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CSR팀의 위상이 줄거나 해체, 유명무실하게 변질하는 사례도 적지 않게 봤다. 물론 이런 회의론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Back to the basic

지금은 CSR을 언제를 기준으로 부활해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필자는 CSR이 국내에 도입된 이후 10년이 지난 변곡점이었던 2011년 즈음을 주목한다. 당시 필자는 포춘 100대 기업과 한국 유수 기업에 대한 CSR 비교 평가, 분석에 글로벌평가위원으로 참여해 한국 평가를 주관했는데 필자는 그 평가 결과를 다시 꺼내 읽어봤다. 결과를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본 후 필자는 최근 모 기업에 미래 CSR 추진 방향성으로 고려해 볼 것을 제안하며 다시금 이 자료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콘퍼런스에 참여하는 독자로부터도 5년 전의 국내외 CSR 기업의 강·약점 분석 보고서에 대해 필자가 받았던 같은 느낌과 반응을 기대하며 그 주요 내용을 여기에 다시 제시한다. ‘원칙은 변화하지 않았고, 과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오늘도 새롭지만 여전히 유효하다’는 조언과 함께.

2011~12년 국내외 총 120개 유수 기업에 대한 평가를 수행한 ‘글로벌 CSR 기업평가'(Tomorrow’s Value Rating·미래가치평가)는 신뢰할 수 있는 우수 사회책임기업의 특징을 다음과 강조했다.
• 이해관계자가 제기하는 지속가능성 이슈를 기업의 핵심 사업과 같은 수준으로 관리하고 사업 운영에 내재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 자사가 당면한 중요 환경적, 사회-경제적 이슈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전략적 계획과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수립하여 실질적 성과를 도출한다.
• 거버넌스 구조, 기업의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관리 시스템, 혁신을 위한 체계적 접근, 그리고 이해관계자 참여를 통한 가치창출 시도에서 우수한 접근을 보여준다.

최고 평가등급을 받은 글로벌 기업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지속가능성 리스크를 인식하고 관리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성 리스크를 핵심 사업모델에 통합하여 새로운 수익 창출 기회를 발굴해 낸다.
• 많은 기업이 여전히 자사의 사회, 환경적 문제와 부정적 사업 관행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대응하며 변화하기보다는 ‘녹색 포장’으로 문제를 덮으려 애쓰는 반면, 우수 기업들은 어려운 이슈에 대한 논의를 회피하지 않는다.
• 지속가능경영이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추진되며, 전사에 걸쳐 실천된다는 명확한 증거를 보여준다.
• 보다 나은 환경 혹은 사회적 영향을 창출할 수 있는 혁신적 제품을 개발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내재화된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다. 더 적은 에너지 혹은 자원을 소모하는 제품, 폐기단계에서 환경 영향이 적은 제품 혹은 소외 계층이나 지역사회에 대한 접근성 높은 제품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 공급망의 사회환경적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핵심 공급망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우수한 정책, 표준, 계약·감사 체계를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공급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수익 모델과 더 나은 성과를 창출해 낼 수 있는 혁신적 접근을 개발하고 있다.
• 이해관계자를 무한한 가치 창출의 원천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이들의 피드백을 기업의 핵심 의사결정 과정에서 수렴하고 반영할 수 있는 명확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매출과 자본의 원천인 고객 또는 투자자와 같은 전통적 개념의 이해관계자뿐만 아니라 규제기관, 압력단체, 학계 등과 같이 자사가 직면한 어려운 과제에 대해 논의하는 이해관계자들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수렴하여 문제해결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솔루션을 모색한다.

국내외 기업 평가에서 모두에서 가장 부족한 점으로 나타난 영역이 동일하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며, 이는 장기적인 사업 성공의 관점에서도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 균형 있고, 투명하며, 철저히 검증된 보고서의 결핍: 파트너십 확대를 위해, 그리고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신뢰가 가장 중요한 시대임에도 신뢰할 수 있는 보고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회사의 역량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 지속가능성 측면을 다루는 기업의 의사결정체계 부재: 기후변화, 인권, 생물다양성과 사회경제적 발전과 같은 지속가능성 측면이 기업의 성공에 핵심 사안이라는 지속가능경영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합의했다는 전제로 볼 때는 이러한 이슈들이 이들 기업의 리스크 관리체계 또는 운영관리시스템 등과 같은 핵심 사업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 혁신 체계에 이해관계자 피드백을 반영하지 못함: 통합적인 솔루션만이 지속가능한 발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시장은 더 급속히 옮겨가는 시대에 이해관계자 피드백을 혁신의 프로세스에서 수렴하지 못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사업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협업하는 이니셔티브 참여가 부족함: 이는 기업이 현재 진행되는 모든 논의 그룹들에 참여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문제가 사업을 운영하는 데 중요한 이슈라고 판단한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모색하는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것이다. 리더 기업이 어디로 갈지 손짓하고 가르쳐 주길 기다리고 있다면 뒤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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